오늘은 조선 후기의 경제변동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조선 후기의 경제변동으로 농촌 경제의 변화와 수공업과 광업의 발달, 그리고 지대 납부 방식이 변화한 이유를 함께 알아보면서 모내기법의 영향과 상품 작물의 재배와 수공업의 발달, 조선 후기의 사회변동의 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조선 후기의 경제변동을 확인해보겠습니다.
<목차> |
■ 농촌 경제의 변화 ■ 수공업의 발달 ■ 광업의 발달 ■ 지대 납부 방식이 변화한 이유 |
농촌 경제의 변화
조선 후기의 경제변동에서 농촌 경제의 변화에 대해서 먼저 알아보겠습니다. 농업기술이 발달하기시작하였습니다. 논농사는 모내기법이 이양법의 전국적보급이 시작하였습니다. 이양법은 모판에 볍씨를 뿌렸다논에 옮겨심는 파종법으로 일손을 크게 줄이고 보다많은 수확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봄 가뭄이 심하면 농사를 망칠 수 있었기때문에 농인들은 제언이나 보등 수리 시설 확충에 힘을 기울였습니다. 이양법의 전국적 보급으로 노동력이 감소하고 절감효과와 수확량이 증가하였습니다. 또한 벼와 보리의 이모작이 가능해졌습니다. 밭농사로 견종법이 확대되었습니다. 견종법은 고량에 파종하는 방업입니다. 이로 인해서 노동력이 감소하고 수확량이 증가하였습니다. 농업의 경영도 변화하였습니다. 광작이 유행해서 친당 경작 면적이 확대되고 지주의 직접 경영이 증가하면서 소작농은 몰락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담배와 인삼 면화,고추,약재등을 재배하기시작하고 쌀의 상품화와 세기 일본에서 도입한 고구마, 19세기 청에서 전래되어온 감자등의 구황작물을 재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지대 납부 방식도 변화하였습니다. 정률 지대하는 타조법이 일반적이었고 일부에서는 정액 지대하는 도조법이 등장하였습니다. 토조법은 수확의 일정비율을 소작료로 내는 것이고 도조법은 수확의 일정액을 소작료로 내는 것입니다. 타조법에서 도조법으로 바뀌면서 소작농의 부담이 줄어들었습니다. 18세기 말이이후에는 소작료가 지대에서 화폐로 변해가기시작하였습니다.
수공업의 발달
조선 후기의 경제변동으로 수공업의 발달을 알아보겠습니다. 조선 후기에는 민영수공업의 발달이 시작되었습니다. 민영 수공업의 발달의 배경으로는 상품 화폐 경제의 발달하였습니다. 시작판매를 위한 수공업제품의 생산이 활발해였습니다. 도시인구 급증과 대동법실시로 인한 관수품 수요가 증가하였고 관영 수공업이 쇠퇴되면서 민영수공업이 발달하기시작하였습니다. 민영 수공업은 판매를 위한 제품을 생산하였습니다. 장인세만 부담하면 비교적 자유롭게 생산 활동에 종사할 수 있었습니다. 민간 수공업 제품의 우수성과 점이 발달하였고 농촌 수공업의 발달하였습니다. 이는 자급자족적인 부업의 형태에서 벗어나 소득을 올리기 위한 상품 생산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자금과 원료를 미리 받아제품을 생산하는 선대제 수공업이 생겼습니다. 세기 후반 독자적으로 제품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독립수공업자가 출현하였습니다.
광업의 발달
조선 후기의 경제변동으로 광업의 발달을 알아보겠습니다. 조선 후기에 광업이 발달하기시작하였습니다. 민영 광산이 증가하였습니다. 정부가 독점해서 광물을 채굴하던 전기와는 달리 17세기에 허가를 받은 민간인이 정부의 감독아래에서 광물을 채굴하는 설점수세제에서 17세기 후반에는 호조의 별장이 수세 상납이외에 광산 경영을 지휘감독하는 광업 별장에로 바뀌었습니다. 18세기 중엽에는 별장제가 폐지되고 수령이 직접 수세하는 수령 수세제가 도입되었습니다. 이후 18세기 후반에는 민간인의 자유로운 광물의 채굴이 허용되었습니다. 광산의은 이득이 많아서 몰래 채굴하는 잠채가 성행하였습니다. 광산의 경영방식을 알아보겠습니다. 덕대라는 경영전문가가 장인물주를 끌어들여서 채굴업자, 채굴 노동자, 제력 노동자등을 고용하여 광물 채굴과 제력을 하였습니다. 분업에 토대를 둔 협업으로 진행하였습니다.
지대 납부 방식이 변화한 이유
타조법은 지대액을 미리 정하지 않고 매년 지주와 소작인이 수확량을 절반씩 나누는 납부방식입니다. 수확량에 따라 지주의 수입도 변화하므로 소작인의 농업경영에 지주의 간섭이 심하였습니다. 이에 비해 도조법은 정해진 액수를 납부하는 방식입니다. 지주는 고정 지대를 받기때문에 농업경영에 크게 간섭하지 않았으며 소작인은 영농 과정과 작물선택을 자유로이할 수 있었습니다. 또 수확량에서 계약한 지대를 제외한 나머지가 모두소작인의 것이 될 수 있었기때문에 생산의욕도 높았습니다. 조선 후기 들어와 도조법이 확대되었는데 이는 토지 개간과 관련이 깊습니다. 지주들은 개간사업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일꾼들에게 영경작권과 정액 지대 방식을 제시하였습니다. 고정 수입이 필요한 궁방이나 관청 지주도 도조법을 선호하였고 소작인과 떨어져 사는 지주들도 정액 지대를 취하였습니다. 지대 납부 방식이 타조법으로 도조법으로 바뀌면서 지주와 소작인의 관계는 점차 경제적 계약 관계로 변화하였고 새로운 부농이 성장하기 유리해졌습니다.
지금까지 조선 후기의 경제변동으로 농촌 경제의 변화, 수공업의 발달, 광업의 발달, 지대 납부방식이 변화한 이유를 알아보았습니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조금씩 알아가는 유익한 시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상입니다.
'대한민국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선 후기의 사회변동 (0) | 2022.08.22 |
---|---|
상품 화폐 경제의 발달 (0) | 2022.08.21 |
조선 후기 정치 변동 (0) | 2022.08.19 |
서양 세력의 접근과 흥선 대원군의 정치 (0) | 2022.08.18 |
조선의 대외 관계와 전쟁 (0) | 2022.08.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