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조선의 대외 관계와 전쟁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조선은 명과의 사대 관계를 유지하였고 두 차례의 큰 전쟁이 있었습니다. 왜군의 침략으로 임진왜란이 발생하고 호란이 발생하였습니다. 지금부터 조선의 대외 관계와 전쟁을 확인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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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전기의 대외 관계 ■ 조선과 일본의 전쟁 ■ 호란의 발생 ■ 양 난 이후 대외 관계 |
조선 전기의 대외 관계
조선의 대외 관계와 전쟁에서 조선 전기의 대외관계를 알아보겠습니다. 조선은 사대 외교를 추진하였습니다. 정도전의 요동 정벌을 추진으로 명과 갈등을 초래하였으나 태종이후에 교류가 활발해졌습니다. 사대 외교로 조공 사절을 파견하고 명의 선진 문물을 흡수해서 경제를 발달시켰습니다. 여진과는 교린 정책을 별치며 귀순을 장려하고 관직 부여, 무역을 허용하는 회유책과 4군과 6진을 설치하고 압록강에서 두만강을 경계로 하는 국경선을 확정하는 강경책을 펼쳤습니다. 사민정책과 토관제도로 북방을 개척하였습니다. 일본과는 강경책으로 세종 때 이종무의 쓰시마 섬을 토벌하였습니다. 회육책으로 3포(부산포, 염포, 제포)를 개방하고 계해약조를 체결해서 제한된 범위내의 교역을 허용하였습니다.
조선과 일본의 전쟁
조선의 대외 관계와 전쟁에서 조선와 일본의 전쟁을 알아보겠습니다. 1592년~1598년에 왜군의 침략이 있었습니다. 1510년 3포에서 일본인들이 무장 난동을 일으켜서 조선의 통제 가 강화되어1555년에 일본인이 제주와 전라도 지역등을 침탈하였습니다. 조선은 비변사를 설치하고 임신약조를 체결하였지만 3포왜란과 을묘왜변으로 교류를 중단하고 비변사의 상설 기구화를 시켰습니다. 1592년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였습니다. 20만 대군을 이끌고 왜군이 침입해서 부산진, 동래성이함락되었습니다. 신립, 충주탄금대에 배수의 진을 쳤지만 패배하고 한양이 함락당했습니다. 선조의 의주 피난과 명에 원군을 요청하였습니다. 이순신의 활약으로 옥포해전, 사천 해전, 한산도 대첩, 명량해전, 노량해전등 수군이 승리를 하며 남해 제해권을 장악하고 전라도 곡창지대수호와 왜군의 보급로를 차단하였습니다. 농민을 주축으로 곽재우, 영규, 조헌, 휴정, 유정등의 의병들이 활약하면서 향토 지리에 알맞은 전술과 전략을 구사하였습니다. 조선과 명의 연합군이 결국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하면서 1598년에 왜군이 철수하였습니다. 이후 조선은 훈련 도감을 설치하고 속오법 실시와 화포를 개량하였습니다. 임진왜란으로 경제작지가 황폐해지고 토지 대장과 호적의 손실로 국가 재정이 궁해졌습니다. 노비 문서 소실되고 전쟁에서 공을 세운 상민과 천민의 신분이 상승하였습니다. 경복궁, 불국사, 사고등 문화재가 소실되고 서적과 도자기,그림등을 약탈당하였습니다. 일본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에도 막부가 성립되며 정권이 교체되었고 조선의 여러 문화재를 약탈해감으로서의 문화발전에 이용되었습니다. 중국은 명의 국력이 약화하고 여진족이 성장하며 후에 후금이 건국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호란의 발생
조선의 대외 관계와 전쟁에서 호란의 발생을 알아보겠습니다. 호란은 누르하치의 후금건국 이후 후금은 명을 공격하명은 조선에 원군을 요청하였습니다. 광해군은 대내로 농경지를 개간하고 토지와 인구조사를 하였고 대외적으로 명과 후금 사이에서 신중한 중립 외교 정책을 펼쳤으나 강홍립이 후금에 항복하였습니다. 1623년에 인조반정이 일어납니다. 광해군의 유교 윤리에 어긋난 정치와 중립 외교에 반발해서 서인이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를 왕으로 추대하였고 서인 정권이 수립되고 의리와 명분을 강조하며 친명배금정책을 추진하였습니다. 1627년에 광해군을 위해 보복하고 서인의 친명배금정책으로 정묘호란이 발생합니다. 용골 산성에서 정봉수,의주에서 이립의 활약이있었고 강홍립의 중재로 형제관계인 정묘약조를 맺었습니다. 1636년에는 병자호란이 발생하였습니다. 청의 군신관계요구로 주화파와 척화파가 대립을 하였습니다. 청의 침입으로 인조의 45일간의 남한산성 항전이 있었고 군신 관계를 수락하는 삼전도의 굴욕을 당하며 명과의 국교가 단절되었습니다.
양 난 이후의 대외관계
조선의 대외 관계와 전쟁에서 양 난 이후의 대외관계를 알아보겠습니다. 청과는 청의 선진 문물수용을 통한 국가 사회의 발전을 추진하고 조선 사신들이 활동하였습니다. 청의 만주 지역성역화로 조선 사람의 일부가 두만강 이북지역에서 활동하고 국경 분쟁이 발생하였습니다. 조선과 청의 대표백두산 일대를 삽다하고 백두산정계비를 1712년 건립하였습니다. 일본과는 에도 막부의 국교 재개요청이 있었고 부산포에 왜관을 설치하며 기유약조 체결로 제한된 무역을 허용하였습니다. 일본은 선진 문물 수용과 막부의 권위를 인정받기 위해 사절을 파견 요청하였습니다. 숙종 때 안용복이 일본 어민을 축출해서 19세기 말 이후 조선 정부도 적극적으로 울릉도와 독도 관리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조선의 대외 관계와 전쟁을 알아보았습니다. 조선 전기의 대외 관계, 조선과 일본의 전쟁, 호란의 발생, 양 난 이후의 대외관계를 확인하였습니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배우는 유익한 시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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