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조선의 사림의 성장과 붕당의 형성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사림의 성장은 훈구와 사림을 알아보고 사림이 분열과 붕당의 출현으로 어떤 성격을 가지게 되었는지 확인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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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림의 성장 ■ 붕당의 형성 |
사림의 성장
사림의 성장으로 훈구와 사림이 있었습니다. 훈구는 혁명파 사대부를 계승하고 세조 이후의 공신 세력으로 왕실과 혼인을 통해 성장하였습니다. 훈구는 부국강병과 민생 안정, 중앙 집권을 추구하였습니다. 사장을 중심으로 다른 사상에 관대하고 단군을 중시하였습니다. 조선 초기 문물 제도정비에 기여하였습니다. 사림은 온건파 사대부를 계승하였고 15세기 중반이후 영남과 기호 지방 중심으로 성장한 지방 사족입니다. 의리와 도덕, 명분을 중시하고 왕도 정치와 향촌자치를 추구하였습니다. 사림은 경학을 중심으로 다른 사상에는 배타적이고 기자를 중시하였습니다. 이는 16세기 이후 성리학 발달에도 기여하였습니다. 성종이 훈구 세력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림을 등용하였는데 김종직과 그 문인들이 3사의 언관직을 차지하면서 훈구 세력을 비판하였습니다. 훈구 세력과 사림 세력의 정치 사상적으로 대립이 생겼습니다. 1498년 연산군 4년에 무오사화가 일어났습니다. 무오사화는 세조를 비방한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사초에 기록한 것을 트접잡아서 김일손등의 사림파를 제거하였습니다. 1504년 연산군 10년에 연산군의 생모 윤비를 폐출 사사 사건에 연루된 훈구파와 사림파를 제거하는 갑자사화가있었습니다. 1519년에 중종 14년 기묘사화가있습니다. 기묘사화는 조광조의 확인정치로 현량과 소격서를 폐지하고 소학보급, 위훈삭제로 조광조의 삭훈 문제등 혁신정치에 불만을 품고 조광조 일파를 제거한 사건입니다. 영종의 외척인 윤원형이 선왕인 인종의 외척 윤임일파를 제거하는 을사사화가 1545년에 명종 원년에 일어났습니다.
붕당의 형성
사림은 서원과 향약을 바탕으로 지방에서 세력을 키워 선조 때 정계의 주류로 성장하였습니다. 척신 정치의 청산과 이조 전랑의 문제를 둘러싸고 기성 사림과 신진 사림이 갈등을 일으키며 동인과 서인으로 분화되었습니다. 동인은 신진 사림을 중심으로 척신 정치개혁에 적극적이었고 이황, 조식, 서경덕의 학문을 계승하였습니다. 서인은 기성 사림을 중심으로 척신 정치 개혁에 소극적이었고 이이, 성혼의 문인이었습니다. 초기에는 동인이 정국을 주도하였고 정여립 모반 사건으로 북인과 남인으로 분당되었습니다. 붕당은 정치적 이념과 학문적 경향에 따라 결집되면서 정파적 성격학문적 성격을 모두가졌습니다. 서원을 통해 정치적 여론이 중앙 정치에 반영하고 조선 후기 각 학파에서 학식과 덕망을 겸비한 인물이 산림이란 이름으로 재야에서 여론을 주재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소선의 사림의 성장과 붕당의 형성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조선과 중국은 붕당이 생기면 조정에 싸움이 일어나고 왕권이 약해질 것이라고 보고 철저히 금기시했었습니다. 그런데 선조때 영의정 이준경이 조정에 붕당이 만들어져있다는 말을 하였고 이이는 붕당 그 자체는 나게 볼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붕당이 공론에 따라 정치를 하는 군자당인지 자신들의 이익만 추구하는 소인당인지 명확하게 가려내는데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 논리가 받아지면서 붕당을 처벌하지 않았고 이동인과 서인의 두 붕당이 참여하는 붕당 정치가 전개될 수 있었습니다. 이상으로 조선의 사림의 성장과 붕당의 형성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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