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저번에 이어서 삼국의 항쟁과 신라의 삼국통일까지 알아보도록하겠습니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삼국시대가 끝나고 결국 신라의 삼국 통일이 이루어집니다. 어떻게 신라의 삼국 통일이 이루어지게 되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고구려와 수의 전쟁
신라의 삼국 통일 고구려와 수의 전쟁입니다. 진평왕30년에 왕이 고구려가 빈번하게 강역을 침범하는 것을 근심하다가 수나라에 요청해서 고구려를 정벌하고자하였고 원광에 수나라가 군사를 청하는 글을 짓도록 명하였습니다. 진평왕 33년에 왕이 수나라에 사신을 보내고 표문을 바쳐서 도움을 요청하고 수나라 양제가 이를 받아들이고 군사를 일으켰습니다. 수나라의 양제는 100만 대군을 이끌고 침입하였습니다. 우중문의 30만 별동대는 평양을 공격을 시도하였고, 고구려와 수의 전쟁 612년에는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이 일어났습니다.
고구려와 당의 전쟁
신라의 삼국 통일 고구려와 당의 전쟁이 있었습니다. 고구려는 천리장성을 축조하였습니다. 연개소문이 당나라에 대한 강경책을 하였고 보장왕이 즉위하였습니다. 당나라의 태종은 안시성을 공격하였습니다. 밤낮으로 쉬지 않고 60일에 50만 인을 동원하였 토산을 쌓았습니다. 아군 수백명이 성이 무너진곳으로 나가 싸워서 토산을 빼앗아 차지하고 주위를 깎아서 이를 지켰습니다. 이것이 유명한 645년에 일어난 고구려와 당의 전쟁중의 안시성 전투입니다.
백제의 멸망과 부흥운동
신라의 삼국 통일 백제의 멸망과 부흥운동으로 넘어갑니다. 백제의 의자왕의 대야성을 공격해서 신라의 김춘추의 딸과 사위가 사망하였습니다. 이를 계기로 신라의 김춘추는 고구려에 도움을 요청하였으나 거절당하고 이후 당과의 외교에 힘을 쓰게 되었습니다. 의자왕 660년에 김유신은 당과 함께 황산벌에서 계백이 이끄는 결사대를 물리치며 백제를 멸망시켰습니다. 복신과 도침이 왕자풍을 왕으로 추대하고 임존성과 주류성을 중심으로 저항하며 백제의 부흥운동을 시대도하였습니다. 하지만 지도층의 내분으로 백제 부흥운동은 실패하였습니다.
고구려의 멸망과 부흥운동
신라의 삼국 통일 고구려의 멸망과 부흥운동입니다. 고구려의 연개소문이 사망이후 거듭된 전쟁으로 국력도 소모되고 지배층이 분열하였습니다. 고구려의 멸망과 부흥운동 고고구려는 권력쟁탈전이 일어났고 668년 보장왕때 나당 연합군에게 멸망하였습니다. 검모잠, 안승, 고연무는 한성, 오골성을 중심으로 저항을 시도하였습니다. 고구려의 멸망과 부흥운동은 안승이 검모잠을 죽이고 신라에 투항하였습니다. 신라는 안승을 금마저에 머물게하며 보덕국왕으로 책봉하였습니다.
나당 전쟁
신라의 삼국 통일 나당 전쟁이 일어납니다.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후 당은 백제지역에 웅진도독부, 신라지역에 계림도독부, 고구려지역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하였습니다. 이 기관은 당의 한반도 지배의 야욕을 보인것이었습니다. 이에 문무왕은 웅진도독부를 축출 후 소부리주를 설치하였습니다. 나당 전쟁은 675년 신라가 당의 이근행이이끄는 20만 육군과 싸워서 매소성 전투에서 승래하였습니다. 나당 전쟁 신라가 당과의 기벌포 전투에서 676년에 승리하였습니다. 나당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신라의 삼국통일일 이루어졌습니다.
신라의 삼국 통일이 나당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자주적 통일을 이루고 민족 문화 발전과 융합의 토대를 마련하였습니다. 하지만 삼국통일의 과정에서 당나라의 도움을 받으며 영토가 축소되었습니다.
이상으로 대한민국 역사 신라의 삼국 통일과정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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