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을미사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삼국 간섭과 을미사변, 을미개혁과 을미의병을 알아보면서 이렇게 삼국간섭이 이루어지게 되었고 왜 을미사변이 일어났는지 을미개혁의 내용, 갑오개혁의 의의와 한계 등을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부터 을미사변에 대해서 확인해보겠습니다.
<목차> |
■ 삼국 간섭과 을미사변 ■ 을미개혁과 을미의병 ■ 갑오개혁의 의의와 한계 |
삼국 간섭과 을미사변
을미사변에서 삼국 간섭과 을미사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정. 일 전쟁에서 승리 일본은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타이완과 랴오둥 반도를 1895년에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러시아가 프랑스와 독일을 끌어들여서 랴오둥 반도의 반환을 일본에 요구하기 시작하면서 삼국 간섭을 하였습니다. 일본이 이에 굴복하였고 한반도와 만주를 둘러싼 러시아와 일본의 대립이 시작되었습니다. 1895년 조선이 일본을 견제하려고 친러정책을 추진하였고 박영효의 일본망명, 일본이 영향력이 축소되자 일본은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을미사변을 일으켰습니다. 삼국 간섭 후 조선 왕실이 러시아를 이용하여 일본의 압력에서 벗어나고자 하면서 일본의 영향력이 급속히 감소하자, 일본은 일본을 배척하는 세력의 핵심이 명성 황후라고 생각하였고 경복궁을 침범하여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1895년 8월 20일 을미사변이후 1897년 3월 명성 이라는 시호가 내려지고 , 11월21일 국장이 치러졌습니다. 명성 황후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리기도 하지만 왕비의 신분으로 궁궐 내에서 외세에게 처참하게 찰해당한 역사적 비운의 주인공이었습니다.
을미개혁과 을미의병
을미사변에서 을미개혁과 을미의병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을미개혁은 1895년에 제3차 갑오개혁입니다. 을미사변 후 제4차 김홍집 내각이 성립되었습니다. 연호를 건양므로 사용하였고 태양력을 사용하였습니다. 종두법을 전국으로 확대 실시하였고 단발령을 시행하였습니다. 고주어이 머리를 깎고 내외 신민에게 명하여 모두 머리를 깎도록 하는 단발령을 내렸습니다. 단발령시행으로 사람들은 분하고 노해서 목숨을 끊으려하였으며 형세가 격변해져서 일본인들은 군대를 대기시키고 경무사 허진은 순검들을 인솔하고 칼을 들고 길을 막으며 만나는 사람마다 머리를 깎았습니다. 한성에는 친위대, 지방에는 진위대를 설치하고 소학교 설립과 우편 사무를 재개하였습니다. 을미개혁은 을미의병과 아관파천으로 중단되었습니다. 을미의병은 명성황후를 시해한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반발해서 유생들은 토역소를 올리고 의병을 조직해서 전국적인 의병의 봉기가 일어났습니다. 이에 봉기에 놀란 조정은 선무사를 파견하는 한편 주력부대를 지방으로 파견하여 이를 진압하는데 주력하였고 혼란의 틈을 근왕세력인 이범진등의 정동파가 아관파천을 단행함으로서 친로내각이 등장하였습니다. 아관파천은 고종이 일본의 위협과 의병봉기의 혼란속에서 러시아공사관으로 처소를 옮긴 사건입니다. 아관파천으로 을미개혁로 중단이 되었습니다. 새 내각은 단발령의 철폐와 의병의 해산을 권고하는 조칙을 냈으며 각종 공세를 탕감하는 조치도를 취함으로서 의병공기의 명분을 없애려고 노력하였고 점점 의병활동은 사그러들었습니다.
갑오개혁의 의의와 한계
을미사변에서 갑오개혁의 의의와 한계를 알아보겠습니다. 갑오개혁은 개화파 관료들에 의해 자주적으로 진행된 개혁입니다. 신분제 폐지, 재정 일원화, 탐관오리 처벌, 무명잡세 폐지등의 갑신정변, 동학 논민 운동의 개혁안을 일부반영하였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전 분야에 근대적 개혁입니다. 갑오개혁은 일본의 강요에 의한 타율적 개혁이었고 민중의 지지를 얻지 못하였습니다. 토지 제도. 상공업 진흥. 국방력 강화를 위한 개혁은 소홀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을미사변을 알아보면서 삼국의 간섭, 을미사변, 을미개혁, 을미의병, 갑오개혁의 의의와 한계등을 함께 알아보았습니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알아가는 유익한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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